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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지시 대명사’를 잘 읽어야 하는 이유(삼하16:23)

성경에서는 지시 대명사를 사용할 때, 종종 ‘시간’이가 ‘사건’ 또는 쓰여진 글(성경)의 ‘문맥’을 지시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이러한 경우에는 정확히 ‘어떠한 시간’을 지시하는지, 어떠한 ‘사건’을 말하는 것인지 또는 어느 ‘문맥’을 말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표현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으면 석의와 해석에 있어 괭장히 큰 도움이 된다.

오늘 그 적절한 예를 만났다. 바로 사무엘하16장 23절이다.

[개역개정] 삼하 16:23 그 때에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더라

보다 의미 전달이 쉽게 최근에 번역된 ‘바른 성경’으로 보겠다.

[바른성경] 2Sam. 16: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내놓는 조언을 마치 하나님께 물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것처럼 여겼으니, 다윗이나 압살롬도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을 그렇게 여겼다.

당시의 상황은 압살롬이 다윗으로부터 반역을 한 상황이다. 이 때에 다윗에게 최고의 ‘책략가’로 있었던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편에 선 상황이다. 아히도벨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압살롬이 승계한 권력을 과시할 수 있도록, 당당히 백성들 앞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잠자리를 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압살롬은 이를 따르는 내용 뒤에 23절의 구절이 따라온다.

이 문장에서 눈이 가는 표현은 ‘하나님께 물어’ 라는 표현이다. 아히도벨에게 받는 조언을 마치 ‘하나님께 물어 받는 조언’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뒷 구문에서는 사람을 ‘다윗’과 ‘압살롬’ 모두라고 말을 하고 있다.

이 문장을 읽어보면 압살롬 뿐만 아니라 ‘다윗’ 또한 아히도벨에게 물을 때 ‘하나님께 물었다’는 표현처럼 될 수도 있다. 정말 이러한 의미로 해석을 하는 것이 타당할까? 다윗 역시 아히도벨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여기며, 하나님에게 묻듯 아히도벨에게 묻고 조언을 받으며 하나님 보다 아히도벨의 책략을 의지하였을까? ‘하나님께 물었다’는 표현은 이야기 흐름상 갈등의 최고조에 있다.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WBC(앤더슨)와 현대 성서주석(브루거만) 모두 이 표현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원문과 이에 따른 사역을 보자.

a) ‏ וַעֲצַ֣ת אֲחִיתֹ֗פֶל아히도벨의 조언은
  • b) אֲשֶׁ֤ר יָעַץ֙ בַּיָּמִ֣ים הָהֵ֔ם 그 때에 내놓는
  • c) כַּאֲשֶׁ֥ר יִשְׁאַל־ בִּדְבַ֣ר הָאֱלֹהִ֑ים 하나님에게 말로 묻는것과 같다.

d) כֵּ֚ן כָּל־עֲצַ֣ת אֲחִיתֹ֔פֶל 이와 같이 모든 아히도벨의 조언은

  • e) גַּם־לְדָוִ֖ד 다윗에게 한 것 처럼
  • f ) גַּ֥ם לְאַבְשָׁלֹֽם׃ ס 암살롬에게도(하였다)

우선, 문장의 ‘주어’는 ‘아히도벨의 조언’이다. a와 d 모두에서 주어가 ‘아히도벨의 조언’에 있다. 단어의 배열을 보면 ‘다윗’이란 단어보다 먼저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관계에서 ‘하나님에게 말로 묻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먼저 등장을 한다. 이 후에 ‘다윗에게’ 란 표현은 ‘압살롬에게’라는 표현과 함께 간략하게 후술 된다. 구문의 강조에 있어서 ‘다윗’이 그러하다를 말하기 보다는, 현재 압살롬이 아히도벨은 하나님 처럼 의지하고, 아히도벨은 다윗의 ‘책사’가 되었던 것 처럼 현재 ‘압살롬’의 책사가 된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점을 보다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이 ‘그 때에 בַּיָּמִ֣ים הָהֵ֔ם’ 라는 표현이다. 해당 구절은 압살롬이 아히도벨로부터 ‘조언’을 받아 다윗의 후궁들과 잠자리를 지붕 위에서 공개적으로 하였다는 이야기 후에 따라온다. 여기서 말하는 ‘그 때’의 시간적 범위는 ‘다윗’과 ‘압살롬’의 시간 모두를 포함하기 보다는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조언을 받는 ‘시간’의 범위로 한정하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초점이 현재의 사건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께 말로 묻는 것과 같다’는 문장은 ‘압살롬’이 지금 ‘아히도벨’의 책략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처럼 절대적임을 말하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그 뒤에 따오는 ‘다윗에게 한 것 처럼 גַּם־לְדָוִ֖ד’과 ‘압살롬에게도 גַּ֥ם לְאַבְשָׁלֹֽם’는 표현은 상당히 함축적이다. 이러한 점은 ‘다윗이 그렇게 여겼다’ 라기 보다는, 아히도벨이 이전에 ‘다윗’에게 조언하였던 것 처럼 ‘압살롬’에게 하고 있다는 ‘상황 설명’에 대한 표현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야기의 흐름을 보더라도 이러한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클릭하여 보기]

이야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과 ‘아히도벨을 의지하는 압살롬’을 비교하는 흐름에 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빠져나가면서 사독과 아히멜렉이 들고 나온 ‘법궤’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허물을 겸손히 하나님 앞에 아뢰며 하나님을 의지한다. 내래이터는 다윗의 ‘허물’을 보여주려 하기 보다는, 다윗의 ‘겸손함’을 보여주려 하는데 더 주목한다. 반면 압살롬은 ‘아버지의 후궁’을 꺼리낌 없이 범하여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본문이 ‘다윗의 허물’ 더 고발하려고 한다기 보다는,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의 말이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이려는 것에 집중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에 보다 더 자연스럽다.

이와 같은 해석을 확정하는데 있어 결정적 힌트는 ‘그 때’에란 시간적 표현에 대한 결정이다. 이와 같이 ‘지시 대명사’가 정확히 무엇을 지시하는지 염두하며 성경을 읽으면 보다 더 명확하고 분명한 의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022-11-21 추가: 일부 유대인의 구전 성경 읽기 전통(케레)에는 ‘묻는다’를 듯하는 이슈알יִשְׁאַל 뒤에 ‘사람’을 뜻하는 이쉬אִ֖ישׁ를 넣어 읽기도 한다. 보통 ‘구전 읽기 전통’은 단어의 ‘모음’을 바꿔 읽는 정도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없는 단어를 ‘삽입’해 읽는 경우는 보기 드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사람’이란 단어를 넣어 읽는 것은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인듯 하다.

출처: HTM-W4(Accordance Bible)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렇게 읽게 될 때, ‘이쉬’ 란 단어가 문법적으로 ‘단수’이다 보니 아무래도 ‘압살롬’을 한정하여 읽게 되는 점도 있다. 이러한 점은 당시의 구전 읽기 전통이 ‘다윗’을 배제하여 읽고자 하는 해석적 입장도 반영되어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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